“지금은 인권홍수시대, 진짜 인권의 의미를 찾아야”

인권중심 사람 전경.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인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존엄에 대한 존중이고, 그 존중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 유일한 민간 인권센터인 ‘인권중심 사람’ 최현모 사무처장의 말이다. 지난 2013년 봄 문을 연 ‘인권중심 사람’은 누구나 인권에 대해 떠들고, 노래하고, 공부하고, 꿈꿀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인권의 가치를 확장하고,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인권이라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회자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회에 소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인권단체와 인권활동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만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같은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인권중심 사람. 이곳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9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인권중심 사람’을 찾았다. 건물 외부에 걸려 있는 무지개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무지개 깃발은 성소수자 (LGBTQ,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퀴어)의 상징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유난히 큰 엘리베이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슬라이드 형식의 문이 양쪽으로 두 개 설치 돼 있었다. 대형 백화점에서나 볼 법한 디자인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에 최 처장은 “교통약자들이 모든 층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엘리베이터”라는 대답을 내놨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 해도 어려움 없이 건물을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최현모 인권중심 사람 사무처장.

인권중심 사람은 문턱이 없다. 누구나 찾아오기 쉬운 곳을 표방한다. 실제 센터 내에 있는 다목적홀과 회의실은 언제든 이용될 수 있도록 활짝 열려 있다. 1.5층에 자리 잡은 인권도서관 ‘동화(冬花)’도 마찬가지다. 2600여건이 넘는 인권 관련 도서가 소장돼 있는 인권도서관 동화는 인권활동가뿐 아니라 지역 주민 등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최 처장은 “인권중심 사람을 이끄는 박래군 소장의 동생이 박래전 열사다. 박래전 열사는 29년 전 광주 학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군사 독재를 극복해야 한다고 외치며 분신했다. 박래전 열사의 유가족은 민주화운동 결정에 따른 정부 보상금 전액을 인권중심 사람에 기탁했다. 그 기금으로 만든 공간이 인권도서관 동화다”고 설명했다.

인권중심 사람을 운영하는 주체는 ‘인권재단 사람’이다. 2004년 9월 설립된 ‘다산인권재단’이 2006년 ‘인권재단 사람’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인권단체와 인권활동가들을 지원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최 처장은 “인권과 관련된 후원구조와 기부문화가 우리나라에서는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인권단체나 인권활동가들의 활동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인권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이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전면적으로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권단체나 인권활동가들은 인간의 기본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침해 받기 쉽고, 깨지기 쉬운 인권을 지켜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회적으로 무서운 사람으로 취급되고, 심지어는 데모꾼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 문화를 바꿔보겠다는 게 저희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권중심 사람은 일반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인권중심사람 설립을 위해 2010년부터 3년간 3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1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모아줬다. 작게는 오천 원부터 많게는 천만 원대에 이르기까지 도움의 손길이 쏟아졌다. 그 돈이 모여 인권중심 사람이 세워졌다.

인권중심 사람에 자리한 인권도서관 ‘동화(冬花)’.

인권중심 사람이 하는 사업은 다양하다. 대표적 사업이 ‘365 기금’이다. 이를 통해 인권단체, 인권운동, 인권활동가를 지원하고 있다. ▲인권프로젝트-온 ▲인권활동119 ▲반차별데이데이 등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인권활동119는 현장의 긴급성이 요구되는 집회, 토론회, 문화행사 등 인권현안대응 활동을 지원한다. 최 처장은 “기업에 의해, 정부 권력에 의해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현장이 늘 발생한다. 인권활동가들이 이를 대응하려고 할 때 당장 차비가 없을 때도 있고, 밥 먹을 돈이 없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인권활동 119가 나서 활동가를 돕고 인권 침해를 막는다”고 설명했다.

인권중심 사람은 인권활동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지원도 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재충전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최 처장은 “임금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진 않지만, 인권활동가의 임금을 시간적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인 시급 6470원도 안 되는 돈을 받는 활동가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모두 활동비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들에게 필요한 ‘쉼’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인권활동가들에게 버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지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 사업을 운영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반올림에 대한 이야기다. 반올림은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를 앞장서 제기해온 노동인권단체다.

최 처장은 “반올림이 농성을 시작한지 600일이 넘었다. 현장을 가보면 15-20명의 사람들이 쉬지 않고 매일 나온다. 얼마나 힘든지 늘 지쳐 있다. 그래서 지난해에 저희 센터에서 지반올림이 쉴 수 있는 기회를 지원했다. 문제는 그들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생기는 공백이었다. 그래서 농성을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아 이틀이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농성을 대신했다. 그런데 그걸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한 기자가 대외농성을 하면서 자리를 비운 반올림에게 진정성이 없다는 기사를 썼다. 그러자 그 기사와 비슷한 기사들이 늘어났다. 그뒤 반올림에 지원을 하는 인권중심 사람을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때 일이 여러 가지 의미로 기억이 난다. 사실 인권활동이라는 것이 활동가에게는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점에서는 매우 유익하다. 유익한 일을 인권활동가들이 대신 해주고 있는 만큼 그 가치를 인정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인권중심 사람 건물 옆에 설치 된 주춧돌. 인권중심 사람 설립을 위해 지원해 준 사람들의 이름이 세겨져 있다. 

만 4년 동안 센터를 운영해 온 인권중심 사람이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닐 터다. 이에 대해 최 처장은 “어렵고 힘든 건 역시 사람과 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사람은 인권활동가이기도 하고, 시민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참여하는 수가 너무 적다. 넉넉한 후원이나 참여가 이뤄지면 그에 비례해 우리나라 인권 현실은 급신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최 처장은 “지금은 인권의 홍수시대다. 누구나 인권을 말한다. 하지만 진짜 인권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권은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다. 빼앗긴 자가 저항하는 권리고, 그 저항을 통해 빼앗긴 것을 찾아오는 권리다. 인권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들, 활동가들, 그들에게 어깨동무해주고 손잡아줬으면 좋겠다. 요즘은 유명인과 아는 사이라는 게 자랑이 되는 시대지 않나. SNS에 인권활동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는 일이 자부심이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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