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주총서 박정원 회장 3년 재선임안 처리

재신임시 회장직 10년 넘겨, 할아버지 이후 최장

사진 = 두산그룹
사진 = 두산그룹

[월요신문=전지환 기자] 두산그룹 정기 주주총회에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 하는 안건이 올라왔다. 해당 안건이 통과될 경우 박정원 회장은 최장 11년간 두산그룹 회장직을 이어가게 된다. 일각에서는 박 회장의 장기 집권에 따라 두산그룹의 형제 경영 체제가 막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오는 28일 열리는 주주총회 안건으로 박정원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 7년간 두산그룹 회장을 맡아왔으며, 이번 주총 안건이 통과되면 2027년까지 3년 더 임기가 연장된다. 이는 두산그룹이 형제간 경영을 시작한 이후 가장 긴 기간이다.

두산그룹은 아버지로부터 '박승직 상회'를 물려 받은 고(故) 박두병 초대회장이 1973년 별세한 후 그 자식들이 순차적으로 그룹 회장직을 맡아왔다. 

오너가 3세 중 첫째인 고 박용곤 명예회장을 시작으로 고 박용오(1996~2005) 박용성(2005~2009) 박용현(2009~2012) 박용만(2012-~2016) 등 형제들이 서열순으로 번갈아 가며 회장직을 이어 받았다. 

박승직 창업주의 적장손이자 두산 오너가 4세대 중 맏이인 박정원 회장은 2016년 부친 박용곤 명예회장의 지주사 지분 50%를 승계받고, 삼촌 박용만 전 회장에게서 경영권을 양보 받으며 2016년 3월부터 4세 경영을 시작했다.

이에 재계에선 박정원 회장과 그 사촌들이 아버지 세대의 관습인 사촌간 경영 세습을 이어갈지에 주목해 왔는데, 이번 박정원 회장의 임기 연장에 따라 사실상 박 회장의 장기 집권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오히려 일각에선 향후 두산그룹이 장자 중심 독자 경영을 유지, 박정원 회장 다음 그룹 총수직 또한 박 회장의 사촌들이 아닌 그의 장남인 박상수 두산 수석이 이어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장자 중심 독자 경영 체제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해당 체제로 그룹이 변화할 경우 자칫 사촌간 경영권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산그룹의 창업

두산그룹은 1896년 박승직 창업주가 종로에 세운 박승직 상점이 두산그룹의 모태라고 전해지고 있다. 설립 당시 박승직 창업주는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포목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던 고가의 수입산 포목까지 취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승직 창업주는 주요 단골에게 사은품으로 화장품을 제공했는데, 이것이 반응이 좋아 1916년 화장품 공장을 만들고 박가분이란 화장품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불티나게 팔린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박승직 창업주는 1925년 박승직상점을 주식회사로 개편한 바 있다.

또한 박승직상 점은 1933년에는 일본인이 국내에 세운 소화기린맥주주식회사의 일부 주식을 인수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소화기린맥주의 대리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은 1945년 9월 박승직 상점은 문을 닫았으나, 박승직 창업주의 아들인 박두병이 1946년 박승직 상점을 두산상회로 바꿔 다시 문을 열었다.

1948년 2월에는 귀속재산 쇼와기린맥주 관리인으로 선임되어 주류 생산에 뛰어들었고, 1952년에 후신인 동양맥주를 정부로 부터 귀속재산 불하받아 그 약자인 OB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출범켰다.

1969년 박두병 동양맥주 사장이 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고,  정수창이 사장 자리에 오르며, 전문경영인 운영체제가 확립됐다.

이후 1973년 박두병 회장이 사망한 후 1975년 동양맥주 기획실을 종합기획실로 개편했으며, 1977년부터 정수창 사장이 그룹회장이 되어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 출신 총수 시대를 열었다. 1981년 박용곤이 회장이 되어 3세 경영체제를 확립했다.

유통사업에서 중공업 사업으로의 변화

1991년 이전까지 두산의 주력 사업분야는 기존의 중공업 분야가 아닌 주류를 비롯한 유통 사업이었다. 그러던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두산전자가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발생시켜 낙동강 라인인 대구 및 경북, 부산 및 경남 지역으로부터 두산 불매 운동 대상이 되어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두산그룹은 OB맥주, 코카콜라, 버거킹, KFC, 네슬레, 코닥, 3M 등 소비재 사업을 주로 하던 기업이었기 때문에 불매 운동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박용곤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1996년 박용곤 회장의 동생인 박용오 회장이 부임하며, 형제 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두산은 유통 사업에서 중공업, 건설, 플렌트 위주로 사업을 재편했다.

두산그룹은 2000년 네오플럭스를 세운 뒤 2001년에 대아건설 등으로 이뤄진 스페코컨소시엄을 제치고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중공업 그룹으로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HD현대인프라코어), 2007년 밥캣(두산밥캣) 등 을 인수하며, 건설중기, 해수 담수화, 발전 플랜트 분야에서 상당한 내공을 쌓았다.

그룹의 위기와 극복

그러나 두산건설의 PF 부실이 두산그룹을 위기속으로 또 다시 몰아넣었다. 2013년 11월 두산건설이 오전에는 자본 감소를, 오후에는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특히나 일산에 짓고 있던 위브 더 제니스 아파트 단지가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자 더욱 위기가 심화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두산건설이  일산 두산 위브 더 제니스의 미분양으로 1,646억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청했다. 문제는 이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며, 두산건설은 상장폐지 됐다. 또한 당시 두산그룹이 두산건설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다시 악영향을 끼쳐 매각 대상에는 클럽모우CC, 네오플럭스, 두산타워, 두산솔루스, 모트롤BG,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두산그룹 핵심 계열사 자산이 포함됐다등 그룹의 여러 핵심 자산을 매각했다.

결국 지난 2021년 11월 두산그룹 위기의 중심인 두산건설 지분권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이로써 두산건설은 두산그룹에서 계열 분리됐다. 그로 인해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및 재무구조 개선 작업은 사실상 거의 마무리됐고, 신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그룹 구조를 재편할 계획을 추진했다.

또한 2022년 2월에는 지난 2020년 채권단과 체결한 3년 특별약정이 종료됐다. 재무지표 개선 등 전통적인 기준뿐만 아니라 두산중공업이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중심의 미래형 사업구조로 사업구조 개편 계획을 수립했고, 이를 충실히 수행했다는 것이다.

당시 산업은행 측은 산은은 두산그룹의 약정 조기 종료에 대해 "짧은 기간 계열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박정원 회장은 3년 재선임에 도전하고 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