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처벌 규정도 모호

여의도 증권가. / 사진=윤주애 기자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금융투자업계가 폭언 및 갑질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업계를 대표하는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의 폭언·갑질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신한금융투자(대표 김병철)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

최근 신한금투의 리서치센터장 A씨가 사내 직원에게 “중학생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폭언을 해 내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일이 발생했다. A씨는 리서치센터 내 프로덕션팀장 B씨에게 업무 역량을 지적하며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과거에도 소속 팀원과 갈등을 빚어 내부 징계를 통해 감봉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에 B씨는 변호사 공증을 거쳐 관련 사안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저촉되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인사부에 제보했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인사부에서 해당 사건을 접수받고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조사가 마무리되면 결과에 따라 징계가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18일에는 권용원 금투협회장이 자신의 운전기사와 직원 등에게 폭언을 하고 홍보 담당 직원에게 기자를 위협하라고 한 사실을 담은 녹취가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해당 녹취에서 권 회장은 운전기사에게 ‘오늘 새벽 3시까지 술 먹으니 각오하고 오라’, ‘미리 얘기를 해야지 바보같이, 그러니까 당신이 인정을 못 받는다’는 등의 폭언을 했다. 또 금투협 홍보실 직원에게는 ‘잘못되면 죽여 패버려’, ‘니가 기자애들 쥐어 패버려’라고 말하는가 하면, 회사 임직원과 함께한 술자리에서는 ‘너 뭐 잘못했니 얘한테? 너 얘한테 여자를 XXX 인마?’라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까지 알려졌다.

이에 권 회장은 지난달 30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며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면서 “다시 한 번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더 낮은 자세로 책임감 있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폭언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는지 묻는 질의에 “관련법에 저촉된다면 당연히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권 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질의에 대해서는 “개인적 사유만으로 거취를 결정하기에는 회원사로부터 선출직 회장에게 부여된 임무와 권한의 무게가 너무 크고, 경영 공백 시 파생될 수 있는 문제점도 많다”고 일축했다.

또한 지난 6월에는 한국금융지주(대표이사 부회장 김남구)의 자회사 한국투자신탁운용 부사장 C씨가 회사 워크숍 자리에서 부하직원 D씨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어 검찰 고소까지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특히 이날 워크숍은 한국금융지주와 한국투자증권이 주관한 ‘2019년 트루프렌드 페스티벌’로 당시 한국투자금융지주를 비롯해 한국투자증권(대표 정일문), 한국투자신탁운용(대표 조홍래),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대표 이채원), 한국투자캐피탈(대표 오우택) 등의 임직원 38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C부사장은 D씨에게 ‘안 오는 ××가 왜 왔어’, ‘×새끼’, ‘씨×’, ‘니 애미 애비가 너를 못가르쳤다’ 등의 욕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D씨는 C부사장을 모욕죄로 검찰에 고소했다. C부사장은 폭언과 욕설을 한 사실을 인정하고, 해당 직원에게 사과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대신증권에서는 ‘사내 PT대회’를 둘러싸고 노사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PT대회 개최 소식이 알려지자 대신증권 노조는 7월 25일 서울 증구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신증권이 추진하고 있는 ‘WM Active PT 대회’는 정부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대회 대상 직원 명단을 살펴보면, 본사에서 영업점으로 발령받은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영업직원, 전략적 성과대상자 등 회사로부터 저성과자로 낙인찍힌 125명의 직원들”이라며 “인사명령이나 연수명령도 아닌 사내 행사임에도 대상자 명단을 공개해 결국 전원 참가를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신증권 관계자는 “일부 저성과자를 대상으로만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과중한 업무 부담을 방지하기 위해 PT 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하고, 일과시간을 통한 대회 개최로 직원들의 불편도 최소화했다”고 반박하며 갈등이 증폭됐다.

이처럼 최근 금융투자업계에서 폭언 및 갑질 논란이 연이어 발생하자, 지난 7월 처음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사실상 무용지물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근로자를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이 모호한 법령과 부실한 처벌 기준 탓에 법 취지 역시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전 후 달라진 점은 크게 없는 것 같다”면서 “아직까지 관련법이 촘촘하게 마련돼 있지 않아 신고를 해도 제대로 된 처벌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