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울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한국어 강사

[월요신문=성유화 기자] '학문과 평화'를 지향하는 한국 경희대학교에서 '갑질'논란이 불거져 이목이 집중된다. 서울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이 한국어 강사들의 노동 인권을 짓밟은 것. 해당 교육원은 20여 년이 넘도록 근로계약서도 없이 온갖 '잡무'를 한국어 강사들의 몫으로 떠넘겨왔다. 그러면서도 강사들에게는 정당한 대가와 보수가 돌아가지 못했다. 이에 대해 경희대 국제교육원 한국어 교육의 한 강사는 "문제를 제기하면 교육원에서 나가라는 태도를 보였다"며 갑질을 주장했다.

사진=서울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한국어 강사

◆"우리는 경희대의 유령"...어디도 소속되지 않은 한국어 강사

경희대 국제교육원 한국어 강사는 학교 내에서 '시간강사'로 불린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 강사도, 교원도, 직원도 아니고 정규직도, 무기계약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우리는 경희대의 유령"이라고 말했다.

한류열풍과 함께 교육센터 내 어학당 강사는 급속도로 늘어났지만, 강사에 대한 직위와 처우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잇따라왔다. 이를 두고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학교지부는 지난 1월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에 '서울대 언어교육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가 고등교육법상 시간강사에 해당하는지'를 질의했다.

노동부와 교육부는 2월 모두 "교육센터 내 어학당 강사는 학부(대학원)의 교육과정을 담당하고 있지 않다"며 "고등교육법상 시간강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노동부와 교육부의 답변에 따라 경희대 국제교육원 한국어 강사들은 시간강사가 아닌 법정근로자다. 그러면서 어떤 형태로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년 간 근무를 해왔음에도 근로자로서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 17조에 따라 사용자는 근로자를 고용하는 경우 근로조건이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사본을 근로자에게 교부해 주어야 하며, 이를 위반할 시 사용자에게만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이에 대해 경희대 국제교육원 한국어 강사들은 "경희대 학부 교수들과 사제지간 출신 강사가 많아 구두계약으로만 근로가 이어지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면 불이익을 받을까봐 반발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전 관리자는 공식적으로 강사들을 불러 퇴직금 소송을 걸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전했다.

강사들에 따르면 일부 강사들이 과거 근로 계약서를 작성한 바 있지만, 그마저도 10여년 전 1학기 기간(3개월)의 계약서가 전부였다. 이후 지속적인 근로에도 재계약을 하지 않았기에 그 계약서는 무효화 된 상태다. 강사들은 "그 계약서도 근무자의 80%는 작성한 적 없다"며 "어떤 기준을 근거로 누군 계약서를 쓰고 누군 안 쓴 건지도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강사들에 따르면 운 좋게 옛날부터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던 강사도 지난 2월 일방적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강사들은 "해당 강사는 지난 해 12월 상사와의 면담 끝에 계약해지 권유를 받았다"며 "이후 해당 강사가 계약을 해지하지 않자 지난 2월 계약해지 서명을 강요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이후 해당 강사는 결국 계약해지에 서명했다. 하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잠시 휴직한 후 복직했다. 엄연히 근로를 하면서도 정확한 명칭도 소속도 없는 또 다른 '유령'이 탄생한 셈이다.

사진=서울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한국어 강사

◆생계 위협하는 '갑질'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어 강사들은 퇴직금과 시간외 수당은 물론, 사실상 정당한 보수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강의 시수에 따라 10시간, 20시간으로 나뉘어 보수를 받고 있다. 연차에 따라 입사 후 6개월 수습기간 동안은 2만5천원, 3년 미만은 3만원, 7년 미만은 3만5천원을 적용한 값으로 보수가 책정된다. 그 이상의 연차에 따른 보수 체계가 있지만 현재 무시되고 있다. 연차에 상관없이 20시간을 강의하는 강사에게는 동의 없이 3만5천원으로 암묵적 동결한 것.

특히나 이들은 지속적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3.3%의 사업소득 세금이 아닌, 기타소득자로 분류된 8.8%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사들은 "윗선에서는 다시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 상관없지 않냐고 한다"면서도 "하지만 계산을 해보니 엄연히 과한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고 설명했다.

강사들은 "경희대 국제교육원은 한국어 강사가 100명이 넘는 큰 규모의 어학당"이라며 "내놓으라 하는 다른 대학 소속 어학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손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규모만 커졌지 강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고 호소했다.

특히나 이들은 강의 외 행정조교의 업무를 비롯한 각종 업무를 도맡아하고 있었다. 강사들은 "학생들 공항 픽업은 물론, 학생들이 경찰서에 가면 늦은 밤에도 그 곳에 가야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행정업무 관련해서도 갑질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강사들은 "20시간을 할당받기 위해서는 행정업무를 해야했다"며 "윗선에서는 행정업무를 하지 않으면 10시간으로 시수를 줄여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강의 시간이 아니더라도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근무를 암묵적 강요받았다"며 "행정 업무의 과중으로 인해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9시 퇴근하는 강사도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이를 이행하지 않으려면 10시간으로 시수를 줄여야만 했다"며 "강의 시수에 따른 보수 외에는 어떤 업무 외 수당이 없었기 때문에 시수는 생계가 달린 문제"라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 광주지법 민사21단독(양동학 판사)는 지난 10월 강의 준비시간 등이 시간강사의 근로 시간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경험칙상 대학교수나 강사가 강의시간 2∼3배의 준비시간이 필요한 점 등을 종합하면 대학 강의의 성격상 강의를 준비하기 위한 연구·자료수집·수강생 평가·관련 학사행정업무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당시 소송인인 시간 강사 A씨에게 주당 근로시간 15시간 이상 근로자로 법원 판결 내렸다.

하지만 서울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한국어 강사들에게는 어떠한 시간 외 수당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에 따르면 교육원은 지난 9월 강의 외 업무를 명시해 법적 효력을 가진 '강의 계약서'를 이들에게 제시했다. 이에 대해 강사들은 "군말 없이 구두적으로 해왔던 시간 외 업무를 아예 법적으로 적시해버렸다"며 "그 '강의 계약서'마저 '근로 계약서'가 아니었고 퇴직금 정산이 불가능한 11개월 계약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나 강사들은 "이같은 처우에 문제를 제기하면 윗선에서는 '외부 강사 부르면 돼'라는 말을 일삼으며 고용불안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경희대학교 측 "한국어 강사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어 난감"

경희대학교 측은 먼저 근로계약서 작성이 이뤄지지 않는 점에 대해 "한국어 강사의 지위에 대해서는 현재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며 "과거에 계약서를 작성한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한국어 강사 지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관계로 계약서 없이 자동갱신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강의 계약서에 대해서는 "강의 계약서상 잡무에 대해 명시되어있지 않다"며 "강사들이 잡무(행정업무)라고 표현하는 업무는 강의 외에 학생 출결 관리, 성적부여, 수료 사정, 학생 상담, 현지학습 인솔, 학생 관련 행사 지원 등인데, 이는 강의에 수반된 활동"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현지학습이나 학생 관련 외부 인솔 등의 활동에 대해서는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경력에 따른 보수 지급에 관해서는 "한국어 강사 개인별 교육 경력에 따라 강사료를 산정해 차등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경희대 측은 '갑질' 논란에 대해 "국가별로 팀을 운영한다"며 "특정 국가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의 배정이 완료된 후, 프로그램 강의를 담당하지 않겠다는 강사에게 다른 강사를 찾아야 할지 묻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며 "또한 행정업무는 강의에 수반된 활동"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경희대 측은 "다양한 측면에서 강사 처우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한국어 강사의 지위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는 관계로 경희대뿐만 아니라 주요 대학교 부속 어학교육기관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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