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그룹, 채권단에 ‘백기’…아시아나 결국 매물로
인수 가격 1조 안팎 예상…SK·한화 등 누가 품을까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은별 기자] “피 토하는 심정으로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 회사가 조속히 안정을 찾고 세계 최고 항공사로 발전해 나가길 응원하겠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16일 사내게시판에 올린 마지막 메시지다.

지난달 말 불거진 ‘회계 쇼크’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결국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인 금호산업은 지난 15일 이사회 의결을 거쳐 현재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다. 처분금액, 처분예정일자 등은 향후 거래 진행 과정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금호산업은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지분 6868만8063주(33.47%)를 전량 처분할 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와 ‘통매각’…채권단, 자구안 수용할 듯

아시아나항공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부터 한 차례 자구안 ‘퇴짜’를 맞은 금호그룹은 최근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함께 박 전 회장 일가가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13만3990주)에 대한 담보 제공, 그리고 금호타이어 담보지분 해지 시 박 전 회장·박세창(아시아나IDT 사장) 부자의 보유지분 119만7498주를 담보로 건다는 내용 등을 담은 2차 자구계획안을 제출했다. 박 전 회장의 경영복귀는 없을 것이란 점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채권단에서는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된다. 산은 등 채권단은 이번 자구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채권단은 오는 25일까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구체적 자금 지원 규모와 방식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자금 지원 규모 등이 확정되면 조만간 재무구조개선 약정(MOU)도 다시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최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자금 지원은) 25일 전 조치가 내려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아시아나항공 매각 과정은 최소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 자회사와 ‘통매각’이 기본 원칙이다. 이에 대해 이동걸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은 자회사와 일괄매각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호산업도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의 별도 매각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인수자가 요청할 경우 별도 협의하기로 했다.

◆그룹 매출 70% ‘뚝’…인수 비용 얼마?

설립 이후 30년 넘게 금호그룹에서 성장한 아시아나항공이 결국 금호 품을 떠나게 된 것이다. 박 전 회장은 지난 16일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아시아나라는 브랜드에는 저의 40대와 50대 60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그동안 아시아나의 한 사람이어서 진심으로 행복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에 애정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그룹은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IDT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에어부산(보유 지분율 44.2%), 아시아나IDT(76.2%), 아시아나에어포트(100%), 아시아나세이버(80%), 아시아나개발(100%), 에어서울(100%)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2월 서울항공으로 시작해 6개월 후 지금의 아시아나항공으로 사명을 변경, IMF를 비롯한 9.11테러, 사스와 메르스,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 시련을 견뎌왔다. 그룹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이기도 하다.

금호그룹은 2004년 그룹 명칭도 기존 금호그룹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할 만큼 항공사업에 특히 중점을 뒀다. 아시아나항공은 이제까지 국내 항공운송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금호그룹에 있어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그룹의 70% 매출을 떨어뜨려야 하는 중대한 결정으로, 그룹은 향후 중견기업 수준으로 사세가 축소될 전망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예상 대금은 1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지난 16일 종가 기준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8450원으로 시가총액은 1조7342억원이었다. 여기서 금호산업 지분(33.47%)에 해당하는 5800억원가량과 자회사 지분 가치, 경영권 프리미엄을 모두 더하면 1조원을 약간 상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동걸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3조6000억~3조7000억원 수준이며 인수자가 모두 갚아야 할 필요도 없다”며 “부채의 극히 일부분이 인수 자금이 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그는 또 “제일 중요한 것은 인수 가격과 자금 지원 능력”이라고 언급했다.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 전경/사진=뉴시스

◆SK·한화, 아시아나항공 인수 2파전되나

어느 기업이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될지는 현재 산업계 초미의 관심사다. 금호산업의 지분 매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가 바뀌면 금융시장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을 앞두고 SK, 한화그룹이 유력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롯데, CJ, 호텔신라, 신세계도 복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통과 물류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SK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설은 지난해 7월부터 흘러나왔다. 당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정식 제안, 전략위원회에서 공식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남규 전 제주항공 대표를 수펙스추구협의회 글로벌사업개발담당 총괄부사장으로 영입했다는 점도 인수설의 배경이 됐다.

SK그룹은 인수설이 불거지자 “현재 아시아나항공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선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검토했던 이력 등으로 미뤄 충분히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로케이에 투자를 시도했던 한화그룹도 항공업 진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인수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한화그룹은 국내 유일 항공엔진 제조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지난해 에어로케이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다가 항공운송사업 면허 반려로 투자금을 회수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항공사 M&A마다 매수 후보로 거론된다.

2015년 금호산업이 매물로 나왔을 때 인수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진 신세계그룹, 물류 부문 강화를 노리고 있는 롯데그룹과 CJ그룹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타진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텔신라도 면세 및 호텔사업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밖에 LCC 1위 제주항공을 보유하고 있는 애경그룹도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노선 경쟁력 확보 및 몸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LCC의 정체성 훼손 우려가 있어 인수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주인 바뀌면 금융시장 신뢰 회복”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가시화되며 아시아나항공뿐 아니라 에어부산, 아시아나IDT 등 자회사들 주가가 급등해 단순 지분가치만 계산해도 1조원가량 된다”면서 “구주 인수뿐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대규모 신주 발행이 진행될 경우, 매수 비용은 신주 인수비용까지 더해져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원종현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금호산업의 지분매각 결정에 따라 채권단과의 양해각서 체결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MOU 체결과 함께 아시아나항공에 대규모 자금 지원이 이뤄질 경우 단기자금 소요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는 한편 유동성 위험 축소, 대주주 변경 가능성에 따른 시장 신뢰 회복 등 자본시장 접근성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는 지난달 말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에 따른 회계 쇼크로 불거졌다. 감사보고서 재작성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2018년 영업이익은 604억원 감소, 당기순손실은 908억원가량 늘어나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우려가 확산됐다. 아시아나항공은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박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신뢰 회복을 이끌지 못했다.

만약 산은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면 아시아나항공은 신용등급 하락으로 연내 1조원이 넘는 차입금을 한 번에 갚아야 하는 위기에 놓일 수 있었다. 금호그룹은 CJ대한통운 지분 및 금호아시아나 사옥 등 자산매각, 에어부산 등 자회사 기업공개 등 가용 가능한 재무구조 개선 카드를 이미 사용해 결국 아시아나항공을 팔기로 최종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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