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실험장 폐기 ‘직후’ 북미회담 취소 통보 팽팽한 기싸움 고조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성유화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오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24일 폭파한 가운데, ‘기다렸다는 듯이’ 회담을 취소한 트럼프의 속내에 관심이 쏠린다.

◆핵실험장까지 폐기했는데...‘충격’

북한은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5월 중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현장 취재에 참여한 러시아 관영 뉴스전문 채널 RT는 “북한 핵무기연구소가 이날 직원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떠나고 있다”며, “이제 그곳에서 핵실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북한 역시 핵무기연구소의 성명을 통해 핵실험장 폐기를 공식 확인했다.

핵무기연구소는 이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핵무기연구소에서는 5월 24일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완전히 폐기하는 의식을 진행하였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언한 지 34일 만에 북한의 핵실험장은 이렇듯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완전 폐기 됐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직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속내를 놓고 이목이 쏠린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에 앞서 북한은 인질까지 석방했던 까닭에 더욱 의문을 갖게 된다.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뉴시스

◆트럼프의 강수, 그 내막은?

트럼프가 이러한 강수를 둔 까닭은 24일 오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앞두고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담화를 가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대미업무를 담당하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이날 담화를 통해 군사공격으로 카다피 정권이 제거되며 체제전환을 이룬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방송인터뷰를 비난하며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펜스 부통령에 대해 "무지몽매하다"고 평가하기도 하며, "우리도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 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거칠게 경고했다.

이에 대한 분석으로는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원하는 안보 우려 해소 사이에 간극이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정상회담 재검토라는 카드를 내밀며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는 ‘기싸움’이란 것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판도는 북한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태도를 거론하며 북미정상회담 취소라는 초강수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김정은 위원장 앞으로 쓴 공개서한에서 "당신을 거기서 만나길 매우 고대했지만, 최근 당신들의 발언들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으로 인해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회담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며 "그러므로 싱가포르 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심정을 드러냈다. 

백악관 관계자도 이날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으며 정상회담을 취소하게끔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은 북미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적다고 봤다"고 밝혀,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이유 중 하나가 준비 부족으로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낼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4일(현지시간)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자신의 역량을 과신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느낄 수 있는 당혹감을 피하기 위해 회담을 취소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부 외교·안보 참모들도 트럼프 대통령과 미 대표단이 이번 협상에 준비 돼 있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2005년 6자회담에서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던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역사상 가장 준비가 부족한 정상회담으로 가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힐 전 차관보는 특히 "우리는 그들이 비핵화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라며 "어느 쪽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동의하거나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양국 정상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담이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식 비핵화 일괄타결을 거론하고 나선 것 역시 전략적 실책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날 온라인매체 복스(VOX)에 "난 볼턴에게 1점을 주고 싶다. 그는 계속해서 리비아 모델을 언급해 위기를 자초했다"며 "이것은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라고 비판했다.

◆향후 북미회담 전망은?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자 세계 정상들이 하나같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매우 당황스럽다.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돼 매우 유감스럽다”는 의견을 비쳤으며,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된 것은 심히 유감이다. 북미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탈출구를 다시 찾기를 바란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특히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콘스탄틴 코사체프 러시아 외교위원회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취소는 명백하게 한반도 평화 정착 과정에서 심각한 해악이다”라고 발언했음을 전했다.

북미정상회담의 전격 취소가 유감이란 여론이 전 세계적으로 형성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부디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며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음을 염두해야 한다.

백악관 관계자도 "북한과의 평화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북한은 수사(말)를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이 기꺼이 통과하고자 한다면 여전히 열려 있는 뒷문이 있지만, 그것은 최소한 그들의 수사 방식을 바꾸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결국, 미국이 북한에게 “정상회담을 하고 싶으면 미국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바꾸고 성의 있는 모습을 보이라”는 압박을 가한 셈이다. 회담 내용상으로 비핵화 등과 관련해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서한으로 공이 북한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북한은 김계관 제1부상을 다시 내세워 담화를 발표했다.

김 부상은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상봉이라는 중대 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데 대하여 의연 내심 높이 평가하여 왔다"며 "그런데 돌연 일방적으로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은 우리로서는 뜻밖의 일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북한이 강경책을 뒤로하고 미국을 회유한 가운데, 양국의 ‘기싸움’은 아직 진행중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측이 실무 논의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고 일정 수준의 합의를 이뤄야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왔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아직 정상회담에서 철수하진 않았지만 '조건 없는 항복'으로 간주되는 리비아 모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북미 양측의 인식차는 6월 12일 정상회담이 시기상조라는 것을 보여준다"며 "양측은 CVID와 리비아 모델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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