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은별 기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황창규 KT 회장에 대한 경찰 수사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경찰 소환 조사를 받은 황 회장은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환 조사 후 경찰은 황 회장의 신병처리 여부를 곧 결정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소환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어 수사가 장기화 국면을 맞고 있다. KT 내부에선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황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회사 측은 황 회장의 중도하차설과 관련해 “공식 입장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10일 “황 회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현재 검토할 자료들이 있어 신병처리 결정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황 회장의 추가 소환 가능성에 대해 이 관계자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 말을 아꼈다.

앞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달 17일 서울 서대문구 본청으로 황 회장을 불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황 회장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KT 법인자금을 불법 후원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KT 임원들은 회삿돈으로 대량 구입한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이른바 ‘상품권깡’ 수법을 통해 비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 4억3000여만원이 흘러간 것으로 보고 지난해 말 수사에 착수했다.

황 회장은 경찰 조사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관계자도 “(불법 정치자금 후원 과정에) 황 회장은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 1월과 2월 두 차례에 걸쳐 KT 본사와 광화문 지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불법 후원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했다. 또 불법 정치자금 후원에 연루된 전·현직 임원들도 차례로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불법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데 있어 황 회장이 직접 지시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예상보다 수사에 시일이 걸리고 있는 상황이다.

수사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직접 증거가 부족하거나 또는 정·재계 안팎의 어수선한 분위기로 인해 수사결과를 발표할 타이밍을 재고 있는 것 같다”고 관측했다.

KT 내부에서는 황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KT노조도 황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가 하면, KT새노조와 KT민주화연대·KT노조본사지방본부 등은 황 회장의 구속 및 퇴진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자청하기도 했다.

또 KT 이사회에서는 현재 사내·외 차기 회장 후보군과 관련, 몇몇 인사가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KT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KT는 이석채 전 회장 때부터 외부 인사가 회장으로 임명됐다”면서 “KT 출신 임원들은 황 회장의 퇴진을 바라고 있고, 삼성 출신 임원들은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 출신으로, 통신 분야에선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

이 관계자는 “황 회장의 거취 문제로 회사가 어정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여론이 많다”면서 “익명 블라인드 앱에도 위즈스틱, 클립카드, 보안 신사업 등을 말아먹은 상황에 고액 연봉만 받아간다며 황 회장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T가 지난 3월 주주총회를 통해 복수대표이사 체제를 통과시킨 만큼 앞으로 있을 주총에서 복수대표이사가 선임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온다. 2020년 3월 주총까지인 임기를 완료하기 위해 황 회장은 직위만 유지한 채 경영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 KT 관계자는 “현재로선 용퇴할 의사가 없어 보이지만, 복수대표이사 정관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복수대표이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최순실 사태 등 권력형 비리에서도 황 회장은 강요에 의한 역할로 피해자 입장이었다. 사임을 하게 될지는 사실상 미지수”라고 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불법 정치자금 후원 문제도 모두 임원들의 탓이라고 선을 그었다지만 정말 KT를 생각한다면 용퇴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KT측은 황 회장의 중도하차설에 대해서는 “따로 드릴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수사와 관련해선 “아직 전달 받은 게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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