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상화폐 거래 원칙적으로 금지”…법률개정안 막바지
금융전문가 “규제에 앞서 가상화폐 실체 규명부터 필요해”

지난 8일 홍콩에서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ATM기 옆에 코인과 표시판이 전시돼 있다. 홍콩은 이 현금자동지급기로 가상화폐를 사용하고 있고 10일 미국에서 비트코인의 선물시장 거래가 시작됐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홍보영 기자] 최근 ‘가상화폐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를 시작한 후 하루가 멀다 하고 큰 폭으로 등락을 거듭하는 가상화폐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가상화폐 투자 열풍을 타고 학생, 직장인, 주부 등 200만명 이상이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들면서 피해자도 속출하고 있다.

가상화폐 시장이 이처럼 과열되기 시작한 데는 ‘가상화폐에 투자해서 주식으로 잃었던 빚을 다 갚았다’, ‘비트코인에 투자해 하루 만에 한 달 월급을 벌었다’ 등 가상화폐를 사서 목돈을 마련했다는 주변 경험담이 한 몫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민들이 떼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가상화폐 투기열풍에 의아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전 세계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은 가상화폐의 ‘그라운드 제로(핵폭탄이 폭발한 지점)’로 불리고 있다.

가상화폐의 투자 열기만큼이나 그림자도 짙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비자원으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 가상화폐 관련 피해구제 현황’에 따르면 올 1~11월 소비자원에 접수된 가상화폐 관련 소비자 상담은 109건이었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해 2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반면 피해상담 109건 중에 피해구제 신청까지 이어진 경우는 30건에 불과했다. 접수된 피해구제 사례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입출금 지연 피해가 56.6%(17건)로 가장 많았고, 미성년자 거래가 20%(6건)로 뒤를 이었다. 전산 및 서버 장애로 인한 매매 중지와 거래 오류로 인한 복구 지연 관련 민원은 각각 16.7%(5건), 6.7%(2건) 발생했다.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가상화폐 시장에서 피해자가 속속 등장하자 정부는 뒤늦게 규제카드를 들고 나왔다.

지난달 28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기본적으로 가상화폐를 통화수단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1일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상통화 가격이 오르는 건 다른 사람이 내가 원하는 가격에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고, 이는 ‘피라미드식 금융사기’나 다름없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날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의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가상화폐의 최근 동향과 대응 방안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가상 화폐 관련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불법행위는 엄정하게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가상화폐 거래를 유사수신행위로 정의내리는 등 규제행위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 시작으로 지난 4일 ‘가상통화 대책 태스크포스(TF)’ 주무 부처를 금융위에서 법무부로 변경했다.

이에 대해서는 ‘뒤늦게라도 규제를 실시해서 다행’이라는 의견과 ‘법무부가 주관부서가 되면 디지털 기술을 저해할 것’이란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가상화폐 거래에 관한 공청회’에서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은 “기본적으로 불법에 대한 행위규제기관인 법무부가 주관부서가 되는 것은 오히려 신기술 성장을 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규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도 정부는 현재 가상화폐 투기 과열에 의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가상화폐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률개정안 제출을 준비 중이다.

12일 정부가 국회 제출을 준비하고 있는 ‘유사수신행위규제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가상통화 거래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치금의 별도 예치 ▲설명의무 ▲이용자 실명확인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구축 등 가상통화 취급업자가 이용자를 위해 일정한 보호 장치를 마련해 운영하는 경우 등을 예외로 한다는 방침이다.

가상통화를 발행해 투자금 또는 다른 가상통화로 조달하는 행위, 신용공여, 시세조종행위, 방문판매법상 방문판매·다단계판매 등은 금지행위로 규정했다.

유사수신행위나 유사통화거래행위를 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 벌금을 내야하며,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이 5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의 3배 이하 벌금이라는 가중처벌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대해 금융전문가들은 현재 가상화폐 시장의 과열된 투기를 잠재울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정부가 규제책을 내놓기에 앞서 가상화폐 실체에 대해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대표는 “정부가 가상화폐 불법거래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에는 찬성한다”면서도 “하지만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 발달에 따라 지급수단에 큰 변화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조심스럽게 규제책을 펼쳐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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