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프랜차이즈 갑질 철폐, ‘죽어나는 건 소상공인’ 우려도…

서울시내 한 파리바게뜨 매장. 사진상 점포와 기사내용은 무관함. (사진=유수정 기자)

[월요신문=유수정 기자] “제빵기사들이 본사 소속으로 전환되면 자영업자들은 어쩌라는 건가요. 들리는 얘기로는 인건비가 20%정도 늘어날 거라는데 솔직히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는 거 아니겠어요? 대기업과 프랜차이즈의 악행을 뿌리 뽑겠다는 정부의 뜻은 알겠지만, 피해를 입을 가맹점주 생각도 해줘야죠.”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 가맹본사(SPC)에 제빵기사 등 파견 직원을 직접 고용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린 다음날인 22일 오전, 서울시내 한 파리바게뜨 매장을 운영 중인 가맹점주 A씨는 이 같이 말하며 한숨을 지었다.

문재인 정부가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뿌리뽑을 것을 선포하고 나섰지만, 정부의 시정 명령에 막상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것은 대기업이 아닌 하청업체나 가맹점주 등 소상공인이라는 분석이다.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함에 따라 발생할 연간 600여억원의 추가 인건비(간접비용 포함)와 지금까지 미지급 된 연장근로수당 110억원 등의 부담이 결국 가맹점주와 협력업체에 전가 될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에 소비자들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옛말이 딱 들어맞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 ‘불법 파견’ 자행한 파리바게뜨, 과태료 530억원 ‘폭탄’

지난 21일 고용부는 파리바게뜨 본사와 협력업체 11곳, 전국 가맹점 56곳 등 총 68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면서, 3396개 가맹점에서 근무 중인 제빵기사와 카페기사 총 5378명을 직접 고용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는 파리바게뜨 본사 측이 가맹점에서 일하는 파견 직원들에 대해 직접 지휘, 명령을 시행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상 사용사업주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본사가 파견 직원에 조기 출근을 지시하고 지각 점검과 지각사유 보고 등의 근태관리를 한 것은 물론 시급 및 기본급 인상 내역에 대한 안내공지, 생산일지 작성, 신제품 생산출하를 비롯한 품질평가, 위생점검 평가 등 업무 전반에 걸쳐 지시 및 감독을 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 같은 본사의 행동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제빵기사의 실질적인 사용사업주 역할을 한 것으로 지금까지의 사업 구조가 이른바 불법 파견이라는 셈이다.

보다 상세히 살펴보면 협력업체 직원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할 수 없는 ‘사내 도급’과 업무 지시가 가능한 ‘파견’의 경계가 불명확했기 때문인데, 애당초 제조업은 현행법(파견법 시행령)상 파견이 불가한 직종이다.

이에 고용부는 파리바게뜨에 직접 고용을 명했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사법처리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연장근무와 임금꺾기 등에서 발생한 체불임금 110억1700만원의 지급을 명했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파리바게뜨는 고용부의 정식 공문을 받은 날로부터 25일 안에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537억8000만원의 과태료와 함께 사법 절차를 밟아야한다. 정부의 명령에 따를 경우에는 연간 600여억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파리바게뜨 영업이익이 655억원던 점을 감안하면 본사로서는 상당한 타격이다.

서울시내 한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가맹점주와 제빵기사, 아르바이트생 등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사진상 점포와 기사내용은 무관함. (사진=유수정 기자)

◆ 본사 갑질 철폐 목적이었지만…피해는 고스란히 ‘가맹점 몫’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프랜차이즈 업계의 생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결국 가맹점만 힘들게 될 것”이라는 반응이다. 프랜차이즈 본사 측의 갑질을 철폐하고자 했던 정부의 뜻과는 달리 정작 피해는 소상공인이 떠안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가맹점주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는 알겠으나 실제 그 부담을 하루아침에 떠안아야 하는 건 가맹점”이라며 “우리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인데 정부의 결정에 소상공인만 죽어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가맹점주 역시 “향후 실제 고용 전환이 이뤄진다면 2명인 제빵기사를 1명으로 줄이고 직접 제빵 기술을 배우는 쪽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고용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부작용으로 가맹점의 매장 운영권 박탈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제빵기사가 본사 소속으로 전환될 경우 가맹점주가 본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제빵기사에게 업무지시를 하는 것 또한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파견직원의 근로처우 개선을 위해 본사 측에서 직접 고용하더라도 직원들이 매장에서 근무하는 형태는 변함이 없다”면서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맹점주가 제빵기사에 업무지시를 시킬 경우 이 역시 불법파견에 해당할 수 있어 논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내 한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상 점포와 기사내용은 무관함. (사진=유수정 기자)

◆ 본사 악행으로 돌아선 소비자에 두 번 우는 가맹점주

제빵기사의 채용 및 운영, 매장 파견 근무 방식은 가맹점주의 선택이 아닌 본사 측의 운영 전략이다. 가맹점주들은 본사와의 가맹 계약에 따라 직원을 채용하고 매장을 운영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의 판결로 파리바게뜨의 ‘불법 파견’ 방식이 도마위에 오름에 따라, 한동안 이미지 하락 및 매출감소로 인한 실질적인 타격을 입을 것은 프랜차이즈 본사가 아닌 또 다른 갑질의 피해자로 일컬어지는 가맹점주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앞서 갑질논란의 시초에 섰던 정우현 전 미스터피자 회장과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전 회장의 성추행 사태 등이 언론에 알려짐과 동시에 소비자들은 앞다퉈 해당 기업의 제품 불매운동에 나섰던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가맹점주들이 고스란히 매출하락에 대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국회에서는 이른바 ‘호식이 방지법(배상법)’이 발의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 “하루아침에 문 닫게 생겼다”…반발하는 협력업체

협력업체 역시 하루아침에 당장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처지가 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10년 넘게 파리바게뜨 본사와 도급 계약을 해왔던 11개의 협력업체들은 자사 소속 직원들이 본사 직원으로 전환될 경우 인력 파견 방식으로 진행되던 회사 운영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리바게뜨 협력업체를 대표하는 정홍 국제산업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회사가 망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끝까지 법정 대응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했다.

또한 체불임금 110여억원과 관련해서는 11개 협력업체가 공식 입장자료를 내고 “파견 직원들이 근무가 끝난 후 퇴근 준비를 하는 시간까지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해 이미 지난 7월 48억원을 지급했던 바 있다”면서 “근무 시작 전 준비를 했던 시간까지 모두 참작해 110억원의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라는데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처사”라고 항의했다.

서울시내 한 뚜레쥬르 매장. 사진상 점포와 기사내용은 무관함. (사진=유수정 기자)

◆ 뚜레쥬르 등 동종업계 및 업계 전반, 불똥 튈까 ‘전전긍긍’

동종업계에 대한 고용부의 추가적인 조사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업계에서는 뚜레쥬르(CJ푸드빌) 역시 정부의 시정명령을 피해가지 못 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뚜레쥬르 측은 도급업체를 통한 제빵기사 파견 등에 있어 운영방식은 비슷하나 가맹사업법에서 규정한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업무지시나 관리감독 등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일정한 품질을 보장해야하는 프랜차이즈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지시는 수반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뚜레쥬르 역시 6개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제빵기사 1500여명을 전국 1300여개 매장에 파견해 근무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파견 방식은 프랜차이즈 업계를 넘어 유통업체 전반적으로도 행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업계 전반에서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한 예로 실제 오뚜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이 시식판매사원이나 행사판매사원을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에 투입하는 과정에서 인력업체에서 단기교육을 받은 사원을 파견하는 방식의 고용 형태를 택하고 있다.

한편, 앞서 고용부는 지난 2013년 2월 이마트를 상대로 특별 근로 감독을 실시하고 23개 지점 판매직 1978명을 불법 파견 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들을 직접 고용할 것을 지시했던 바 있다. 이에 당시 이마트는 같은 해 매장 진열 직원 등 협력업체 직원 1만여 명을 직접 고용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