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진행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 시험발사 장면 <사진=뉴시스>

[월요신문 임해원 기자]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최근 북한이 미사일 실험 발사를 계속하면서 한국도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점증되고 있다. 주요 외신도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7월 31일, ‘왜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국내 핵무장여론과 핵무장에 따르는 문제점에 대해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핵보유 주장을 소개하며, 한국 내에 이미 상당한 핵무장지지 여론이 존재한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2006년 이후 한국에서 시행된 대부분의 설문조사에서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60% 이상을 기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러나 한국이 핵개발에 필요한 기술력은 충분히 갖췄지만, 외교적·경제적 이유로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곧 1975년에 가입한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으며, 경제제재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무릅쓰고 NPT를 탈퇴한 국가는 북한이 유일하다. 만약 NPT 탈퇴로 인해 우라늄 금수조치가 시행된다면 국내 전기소비량의 30%를 담당하는 원자력발전소의 가동도 어려워진다. 또한 한국의 핵개발은 중국·일본·대만 등 주변국가와의 군비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의 선제타격이 이뤄져 전쟁에 돌입할 가능성도 존재하다.

한국의 핵무장이 미국에서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은 2015년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분석한 보고서를 핵 비확산 전문가 그룹에 제출했다. 해당 그룹 내에서 비공개로 회람된 소위 ‘퍼거슨 보고서’의 내용은 외부에 공개되자마자 국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왔다. 특히 퍼거슨 보고서에는 경제제재, NPT, 한·미관계 등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억제하는 요인들에 대한 반론들도 서술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퍼거슨은 보고서에서 경제제재로 한국의 핵무장을 완전히 억제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며 인도의 예를 들었다. 인도는 1998년 핵실험 이후 경제제재를 당했지만 이는 1년도 채 지속되지 못했다. 경제제재를 지속하기에는 인도의 거대한 내수시장 진출에 따르는 경제적 이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 인도가 지닌 군사적 가치도 미국에게는 매력적이었다. 한국은 인도 내수시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세계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소비되는 다수의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퍼거슨은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가 수개월 내에 해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NPT의 경우,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한국이 탈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조약의 제 10조 1항을 보면, 국익을 위협하는 비상사태의 경우 3개월 전에 조약 당사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통고한 다음 NPT를 탈퇴할 수 있다. 물론 NPT 탈퇴가 제재로 이어질 수 있지만, 원자력산업분야에서 한국과 합작 중인 미국·프랑스·일본 등의 국가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심각한 수준의 제재를 주장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동맹의 악화와 중·일과의 군비경쟁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 유지비가 상승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재정적 여력은 점차 감소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퍼거슨 보고서’는 아태지역에서의 군사적 부담을 덜기 위해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만약 경제적·외교적 억제력이 사라진다면, 한국이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을까? ‘퍼거슨 보고서’는 한국의 기술력이 이미 충분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 핵물질 ▲ 핵탄두 설계 ▲ 운반체계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핵물질의 경우 월성에 위치한 4개의 가압중수로에서 매년 416개의 핵폭탄을 제작할 수 있는 2,500kg의 준무기급 플루토늄이 생산 가능하다. 만약 우라늄의 추가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핵폭탄 100개 분량에 해당하는 500kg의 플루토늄은 확보할 수 있다. 핵무기용 플루토늄 가공을 위한 재처리 시설도 연 50kg의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소규모 시설의 경우 4~6개월이면 완공이 가능하다. 즉, 핵무기의 양산은 무리더라도 외교적으로 활용 가능한 소수의 핵무기 제작은 단기간 내에 가능하다는 것.

보고서는 고성능 핵탄두 설계에 필요한 고속전자기폭장치와 고성능폭약 생산기술 또한 한국이 이미 확보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듀테륨, 트리니튬, 리튬-6 등 핵탄두 설계에 필요한 원료도 충분하다. 특히, 보고서는 한국이 2012년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광산의 리튬 개발 사업권을 따내면서 리튬의 안정적인 수입이 가능해졌다고 지적했다.

운반체계도 충분하다. 지대지미사일의 경우 한·미 미사일지침으로 사거리와 탄두중량이 제한된 상태지만, 현재 제한사거리인 800km만으로도 북한 전역이 타격 범위에 들어간다. 한국은 이미 사거리 800km의 탄도미사일 현무 2-C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사거리가 약 1,500km에 달하는 순항유도미사일 현무3도 보유중이다. 특히 현무3의 경우 원형공산오차가 1~2m에 지나지 않아, “창문을 통과해 목표를 맞출 수 있을 정도”다. 이외에도 F-15, F-16 등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투기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퍼거슨 보고서는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지만, 한국의 핵무장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대안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핵무장을 할 경우 주변 국가들의 핵무장 경쟁을 불러일으켜, 결국 동북아 국제정세가 악화될 뿐이라는 것. 퍼거슨 회장은 이를 방지할 방법은 미국이 한·일 양국에 확실한 군사적 억제력을 보장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며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실제로 퍼거슨 보고서의 시나리오가 실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퍼거슨 보고서가 작성된 2015년과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퍼거슨 보고서는 핵무장을 지지하는 보수적 정치세력의 집권을 시나리오의 첫 수순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햇볕정책 지지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상태다. 7월 28일 북한의 2차 화성-14호 발사실험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이라는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핵탄두 설계에 필요한 리튬의 확보도 쉽지 않다. 퍼거슨 보고서에서 언급된 2012년 볼리비아 리튬 개발 사업은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의 최대 업적으로 홍보됐지만,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미국도 한국의 핵무장보다는 중국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최우선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도 퍼거슨 보고서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핵무장은 미국의 핵우산은 물론 한·미동맹도 필요없다는 뜻”이라며, “한국은 한·미동맹 없이는 죽는다는 공포증이 있어 감히 꿈을 못 꿀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도 뉴스 1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양국 간 신뢰성 마련을 시작으로 핵우산이 작동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미사일 방어체계(MD) 등 도입을 통해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망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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