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집중투표제 내년 도입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100 + 새로운 대한민국' 국정과제 보고대회가 열린 청와대 영빈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 임해원 기자]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위해 칼을 뽑았다. 19일 청와대는 향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재벌의 전횡을 방지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개선안을 제시했다. 그중 핵심은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집중투표제의 도입이다. 재벌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제한하고, 소액 주주들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 위 제도의 도입 취지다.

 

다중대표소송제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 경영진의 부정행위로 모회사가 피해를 입었을 시, 모회사의 주주들이 자회사의 이사 등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주주대표소송제도는 지분을 보유한 회사의 경영진에 대해서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지만,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모회사의 지분 1% 이상을 보유한 모든 주주들은 모회사 뿐 아니라 자회사 및 손자회사에 대해서도 경영실패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한국식 기업지배구조에서는 지주회사·순환출자를 통해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만으로 계열사들을 통제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총수 일가의 지시에 따라 부정행위를 저지른 자회사 이사에게 회사나 재벌이 책임을 추궁할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일반 주주에게까지 소송제기 권한을 확장하는 다중대표소송제는 총수 일가의 방만한 운영을 감시·예방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제도로 평가된다.

 

집중투표제

집중투표제는 선임할 이사의 숫자만큼 주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3명의 이사를 새로 선임하고자 한다면, 1주의 주식을 가진 주주가 3표를 행사하는 식이다. 1주1표를 행사하던 기존 관행 하에서는 이사 선임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영향력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집중투표제가 적용되면 소액주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자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기 때문에, 총수 일가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이미 1998년에 도입된 제도지만 의무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에서 적용되고 있지 않다. 2016년 기준 대기업집단 상장 계열사 165개사 중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SK텔레콤, POSCO, KT, KT&G 등 8개사(4.9%)에 불과하다.

 

전자투표제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전자투표시스템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시기나 장소 등의 제약으로 총회 참석이 어려웠던 주주들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 2009년 도입되었지만, 이 제도 역시 의무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에서 아직 도입하지 않고 있다. 2016년 기준 상장사 165개사 중 전자투표제 도입 비율은 16.4%(27개 사)다.

 

재벌개혁안이 포함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계획이 발표되자 재계는 반발하는 분위기다. 특히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크게 제한하는 제도로 수년 간 찬반논쟁이 지속되어왔다. 재계는 특히 외국계 자본이나 투기세력에 의해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시 지주회사의 주식 1%만 보유해도 다수의 계열사 경영진에 소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 자본이 기업운영 전반에 간섭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지주회사 주식을 보유한 외국계 펀드가 소를 제기해 자회사의 주식 가치를 떨어뜨려 놓고, 이후 싼 값에 주식을 구매해 보유지분을 늘릴 수도 있다.

집중투표제의 경우, 해외자본이 적은 지분으로도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이사를 선임해 기업 경영에 쉽게 관여할 수 있다. 이처럼 해외 자본의 영향력이 강화되면,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막대한 비용이 소모된다는 것이 재계의 반대논리다. 재계 한 관계자는 “2003년 SK그룹이 소버린, 2006년 삼성물산이 헤르메스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등, 그간 국내 기업들이 외국계 펀드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려 들인 돈만 수조원에 달한다”며 해외자본에 의한 제도의 악용가능성을 지적했다.

반면 이러한 우려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반론도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경제개혁연대에 몸담고 있던 2016년 “외국계 자본의 이사회 장악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 대한 재계의 반발을 일축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12년 말까지 주주대표소송은 한해 평균 3.86건이 제기됐고, 가장 많은 해도 겨우 7건에 불과했다. 이중 해외투기자본에 의한 소송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된다 해도 재계의 우려처럼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다가 단기차익을 노리는 소송도 지분보유기간에 제한을 둘 경우 해결할 수 있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상법개정안에는 모회사가 상장기업인 경우 6개월 이상 지분을 보유해야 소송을 제기할 권한이 생긴다는 규정이 포함되어있다. 이 경우 해외투기세력이 단기차익을 노리고 소를 제기할 가능성을 원천에 봉쇄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에 의한 경영권 위협도 재계가 지나치게 부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5년 기준 재벌기업의 이사 수는 평균 6.3명으로, 이마저도 대부분 선임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해마다 선임되는 이사의 수는 약 2~3명 정도다. 만약 선임할 이사 수가 2명일 경우 집중투표제로 이사 1명을 선임하기 위해서는 총 지분의 3분의 1이 필요하다. 선임 이사의 수가 줄어들수록 필요 지분이 늘어나는 집중투표제의 특성상, 해외 자본에 의한 이사진 장악은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해외 자본들이 공동행동을 통해 이사를 선출하고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다중대표소송제·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재벌개혁의 열쇠로 제시되어 왔다. 박근혜 정부도 2013년 상법개정안을 통해 이 제도들을 도입하려했지만 재계의 반발로 결국 무산되었다. 십년 이상 지연된 재벌개혁제도의 도입과 의무화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이행을 위한 첫 번째 과제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외에도 재벌 전횡을 막기 위해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제, 순환출자구조 해소 등을 위한 방안을 내년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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