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대비행중인 수리온(KUH-1) <사진=뉴시스>

[월요신문 임해원 기자]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KUH-1) 개발사업과 관련된 각종 비리 혐의가 감사결과 밝혀지면서,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KAI)에서 추진 중인 여타 사업도 의혹을 사고 있다. 특히 소형 민/군수 헬기 개발사업인 ‘LAH/LCH’사업계획이 도마에 올랐다. 자주국방네트워크 이일우 사무총장은 17일 CBS 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해 한국형 경헬기 사업이 “제 2의 수리온”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지금 추진 중인 한국형 경헬기사업에 개발비가 1조 6000억 원이 들어간다. 4000억 원 정도는 우리한테 구형헬기 기술을 팔았던 그 회사에 그대로 들어가게 된다. 전문가들이 계속해서 반대를 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리온과 같은 방식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형 경헬기 개발 사업(LCH/LAH)은 기존 한국형 헬기사업(KHP)의 일부로, 기동헬기(수리온)와 연계된 공격헬기 개발 사업이 소형화 필요성에 따라 분리된 것. 소형무장헬기 개발로 군의 노후화된 기체를 교체하는 한편, 소형민수헬기 개발을 동시 추진해 민수헬기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2011년부터 탐색개발이 시작됐다. 공격헬기 개발사업에는 방위사업청이 6,500억원을 지원하며, 민간헬기 사업에는 산업통상자원부 3,500억원, KAI 2,000억원, 해외공동개발업체 4,000억원을 공동으로 지원한다. 총 개발비 1조 6천억원의 대형 프로젝트로 민수헬기와 무장헬기를 각각 2020년, 2022년에 개발 완료할 예정이다.

경헬기 사업은 여러 면에서 수리온 개발사업과 비슷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우선 신형 헬기 개발 사업이면서도 구형 기체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 동일하다. 수리온 개발비 1조 3천억원 중 3,100억원은 기술이전료 명목으로 협력업체인 에어버스 헬리콥터스(AH, 전 유로콥터)에 지불됐다. AH가 수리온 개발을 위한 기본 플랫폼으로 제공한 기체는 AS532U 쿠거(Cougar)로 1977년에 개발된 구형 기체다. 이번 경헬기 사업의 협력업체도 수리온 개발 사업과 동일한 AH로, AH가 이번에 제공한 기본 플랫폼은 1997년 개발된 H155다. 하지만 이 기종도 1975년 개발된 AS365를 개량한 것으로 사실상 40년 전 개발된 구형 기체인 셈이다. AH는 국외업체 공동개발부담금 4,000억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KAI는 “AH의 기술 가치와 해당 시장 포기 대가로 4,000억원을 환산해줬다”고 설명했다. 40년 된 구형 헬기를 사는데 4,000억원을 쓴 셈이다.

AH의 행태도 문제다. AH는 수리온 개발 플랫폼으로 AS532U의 설계도를 넘겨준 뒤, 후속 모델인 H215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은 바 있다. 지난 3월에는 경헬기 사업의 기본 플랫폼으로 제시한 구형 모델 H155를 단종시키고, 후속모델인 H160을 발표했다. 즉, AH가 구형 모델을 한국에 비싼 값으로 떠넘기고, 그 돈으로 신형 모델을 개발하는 꼴이 된 것. 수리온과 경헬기 개발 사업 모두 해외 헬기시장 진입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협력업체가 신형 모델을 내놓은 상황에서 이미 단종된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된 한국형 헬기가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다. KAI는 이번 경헬기 개발 사업으로 총 600여대의 민수/무장헬기를 수출할 계획이지만, 이미 레드오션인 헬기 시장에서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리온의 경우는 비행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수출 실적이 전무하다.

주로터블레이드(MRB)와 자동비행조종 시스템(AFCS SW), 능동진동저감장치(AVCS) 등의 핵심기술도 제대로 이전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2016년 방사청, 산업부, KAI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수리온 개발 당시 이전받지 못했던 핵심 기술은 경헬기 개발 사업에서도 이전받지 못했다. KAI는 자체 개발의사를 밝혔으나 사업완료시점까지 개발하지 못할 경우 해외 업체의 기술과 부품을 들여와야 한다. 방사청은 “모든 기술을 이전받는 것은 아니며, 필요한 기술은 약정을 통해 이전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소형무장헬기 LAH의 경우 실전에서 사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군사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LAH는 본격적인 공격헬기라기보다는 경수송헬기인 LCH(Light Civil Helicopter)를 개조해, 수송공간에 무장탑재장비를 장착한 무장헬기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헬기에 비해 공격력과 생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따르면, LAH의 최대 이륙 중량은 약 4.5톤으로 탑승인원과 연료, 무장탑재장비 등을 제외한 무장탑재량은 약 200kg 정도다. 이 때문에 자주국방네트워크 이일우 사무총장은 “무장탑재중량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미사일 몇 발만 달아도 기체가 둔중해져 대공사격에 민첩한 반응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도의 경우, 한국과 비슷하게 경수송헬기인 ‘Dhruv’를 개조해 경무장헬기 ‘Rudra’를 개발 운용한 바 있다. 하지만 인도는 ‘Rudra’를 본격적인 공격헬기 개발을 위한 징검다리로 사용했다. 인도는 ‘Rudra’가 주력 공격헬기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생산물량을 대폭 축소했고, 공격헬기 LCH(Light Combat Helicopter)를 개발하는데 예산을 투자했다. 경무장헬기 500MD를 같은 방식의 LAH로 대체하는 한국의 헬기 개발사업과는 천양지차다.

KAI는 지난 6월 27일, 내년 9월 출고를 목표로 LAH의 시제품 1호 조립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앞에서 제기된 문제점에 대한 개선 없이 사업이 진행되면 제2의 수리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리온 사태로 KAI에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경헬기 사업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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