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심리상태요? 다 드러났으니 나 죽여라 할까요”

권일용 경감. <사진=월요신문>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제가 만난 성범죄자, 살인범죄 중에 자기 죄를 뉘우친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최초’라는 단어는 고독을 동반한다. 프로파일러의 세계는 더 그렇다.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숨은 진실을 캐는 프로파일러의 눈에 비친 살인마들은 그런 모습이었다.

권일용 경감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1호 프로파일러다. 17년간 프로파일러로 일하며 그는 숱한 악마와 마주 했다. 그중 단 한명에게서도 참회어린 말을 듣지 못했다는 그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5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권일용 경감을 만났다. 첫 인상은 의외였다. 프로파일러답게 냉철하고 무뚝뚝한 할 거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푸근한 인상에 한마디로 ‘동네 아재’ 같은 타입이었다.

권 경감은 1989년 8월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4년 뒤인 1993년 감식요원으로 선발됐고 2000년 2월, 프로파일러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토막살인범 오원춘, 초등생 성폭행범 고종석 등 우리 사회를 뒤흔든 흉악범들은 모두 권 경감과 마주했다. 그는 이 외에도 살인, 성범죄 등 강력사건 피의자 1천여명 이상을 상대했다. 어지간히 강한 멘탈의 소유자가 아니고선 달성하기 어려운 업적이었다.

권 경감은 지난 17일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국내 프로파일러 1호로 명성을 떨쳐왔는데 갑자기 명퇴를 선언한 이유가 뭡니까.

나이 들면서 면역력도 떨어지고 스트레스도 받고 그러니까, 가치기준이 바뀌는 것 같아요. 물질적인 가치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압박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했어요.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하니까 그걸 바라보는 가족들도 마음이 편치는 않잖아요. 특히 딸이 믿고 응원을 많이 해줘서 용기를 가졌어요.

 

가족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가족들은 충격이었죠, 먹고살 게 없는데. 한 3개월 설득했어요. 공식적으로 퇴직 발표가 난 게 2주 전인데, 사실 후배 프로파일러들에게 ‘선배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면서 온갖 협박을 많이 받았어요(웃음). 퇴직 소식이 언론에 많이 보도돼서 동료, 후배, 지인 등 전화가 많이 왔어요. 그 분들과 하루도 안 빼놓고 저녁마다 만나고 있어요. 그런데 일 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때랑, 이렇게 홀가분한 상태에서 갖는 술자리는 다르네요.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그렇게 몸이 힘들고 그렇지는 않아요.

 

수많은 범죄자들을 만났는데 멘탈을 유지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습니까.

비법은 없어요. 소맥이요(웃음). 무슨 일이나 스트레스는 있기 마련이죠. 스트레스 안받고 직장 동료들 간 갈등 없고 그런 환상적인 곳이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제 일은 좀 달랐어요. 범죄자들과 5~6시간 온갖 흉악한 얘기를 하면 지치죠. 또 어떤 사건에 대한 분석 결과가 나오면 제가 다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하거든요. 어디 하나 물어볼 데가 없어요. 그런 것에서 오는 고독과 외로움이 있죠. 프로파일러는 한번 투입되면 모든 신경을 사건에 쏟아요. 밤새 커피 마시고 근무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쏟습니다. 일 끝나고 나면 동료 간에 잡다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혼자 있는 게 아니구나, 하고 견뎌냈어요. 호프집에 가던지, 차를 마시던지 꼭 동료, 후배들과 함께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했냐’ 이런 간단한 이야기를 하죠. 이런 시간이 왜 필요하나면, 이런 힘든 일들을 나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요. ‘너도 힘들지, 내가 있어. 괜찮아.’ 이렇게 서로 심리적으로 지지하고 교류하는 거죠. 그게 큰 도움이 됐어요.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던진 범죄자들을 많이 대했는데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었습니까.

고립이요. 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사회와 고립되고 단절돼 있어요.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함께 상의하고 대화 나누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없어요. 그냥 그 문제를 혼자 내면화시키면서 분노가 쌓여가죠. 이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된 사회에서 배제되어있는 감정을 느껴요.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배제’라는게 있어요. 범죄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이 사회적 배제감이에요.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다 박탈돼있다는 감정. 촛불을 든다던지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표현하면서 사는 게 정상인데 이런 기회들이 박탈돼 있어서 자신을 잉여인간으로 느끼거든요. 그래서 사회 구성원 누군가를 공격해도 전혀 미안하지 않죠. 사회 유대 관계가 깨지는 거예요. 이런 분노가 어떤 사람에게는 사기 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폭력으로, 어떤 사람은 살인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자라온 환경이 범죄를 부른다는 얘기입니까.

일반화할 수는 없어요. 어릴 적에 아동학대를 당하거나 어려운 가정환경 출신 중에도 정상적으로 잘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게 자기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요. 그런데 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거죠. 또 동일한 자극에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른데 그런 기질적인, 사회적 환경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선진국 등 해외 연구를 살펴봐도 같습니다. 어떤 유형의 사람이 범죄를 많이 하는지, 타고난 범죄자가 있는지에 대한 결론이 나온 것은 없어요,

 

최근 들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살인, 동기 없는 살인이 많아지는 이유는 뭔가요?

저도 몰라요. 저는 범죄자를 검거하고 범행 동기를 파헤치는데 주력해왔어요. 범죄가 왜 발생하는지, 범죄가 타고난 사람이 있는 건지 등은 추측만 하죠.

이유는 몰라도 시대 변화에 따라서 변화하는 범죄 유형을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 90년대 이전에는 범행 동기가 뚜렷했어요. 그 이후 IMF, 정치적 문제 등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으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생겨났어요. 그리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연쇄살인의 시대를 맞이했죠. 지금 일어나는 범죄는 분노, 감정에 의한 범죄예요. 어떤 계획적인 범죄라기 보단, 사소한 접촉에 과도하게, 혹은 사전에 어떤 접촉이 없더라도 내 감정을 아무에게나 표현하는 범죄가 일어나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범죄자는 누구입니까?

정남규.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인데 2004년 1월부터 4월까지 13명을 살해했어요. 2009년도에 교도소에서 자살했어요. 얘는 내가 만난 애들 중에 가장 톱이에요. 사람의 어떤 나쁜 감정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들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프로파일러를 지내면서 어떤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꼈습니까?

사람이 모자라요. 사건은 많은데 전국에 프로파일러가 32명이에요. 한 사람의 전문인력을 키워야 하는데, 사실 국내 현실이 너무 열악하죠. 국내에도 경기대라던가 범죄심리학을 연구하는 곳이 한두군데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학문만 있고 범죄 행위라던가 범죄자에 대한 ‘경험’ 정보는 없어요. 범죄심리학에서 연구하는 것이 결국 판결이 다 끝나서 교도소 가서 교화되고 있는 사람 데이터 갖고 하거든요. 교도소 간 애들은 어떻게든지 자기를 잘 포장하고 거짓말하는 애들이에요. 안정적인 데이터가 아닐 수 있죠. 그런데 우리같이 현장에 있는 프로파일러들은 실제 범죄 현장에 가서 보잖아요. 그놈이 한 행동, 어떻게 계획하고 피해자를 어떻게 토막내고...그걸 보고 나서 범죄자를 만나면 거짓말을 해도 다 알아요. 이놈이 자기합리화를 하려고 해도 정확히 분석해냅니다.

그러니까 실제적으로 범죄자를 만나고, 유형별로 어떤 특성이 있더라 하면서 실제적인 연구를 하고 이것을 학문과 융합을 잘 해서 억제나 예방, 정책 등 학계에서 연구가 되어야 해요. 단순히 저 같은 사람이 범죄자 몇 명 잡아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근데 그런 기능을 해야 할 인프라가 전혀 구축이 안 돼 있어요.

 

범죄자가 자기합리화 한다는 건 어떻게 아시나요? 딱 보면 아세요?

단편적인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대화를 3~4시간 끌어가다 보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뿐이지, 실제적인 감정을 조금도 느끼지는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네가 진짜 잘못했다고 생각하냐’고 물으면 ‘네 저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습니다’라고 말은 해요. 그런데 그놈은 전혀 뉘우치지 않고 있거든요. 제가 만난 성범죄자, 살인범죄자들 중에 자기 죄를 뉘우친 놈은 한 놈도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나와도 계속 같은 범죄가 반복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교정시설의 필요성이 있습니까. 결국 범죄자를 교화시키기 위해서 교정시설이 존재하는데요.

기자 분은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드세요? 나쁘다고 생각하는 성격을 스스로 고칠 수 있습니까. 그거 쉽지 않습니다. 다만 고치려고 노력하고 단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천성은 바뀌기 참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절대적으로 교화가 안 된다는 건 아니에요. 교정 관련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어요. 그래서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화가 됩니다. 하지만 (연쇄 살인마들은) 교화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해요. 한 명도 뉘우치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국내 과학수사 장비는 모자람이 없나요? 어떤 환경이 열악하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장비는 충분해요. 제가 10년 전에 미국 갔을 때 봤던 대부분의 장비들이 우리나라에 다 들어와 있어요. 인력이 부족한 문제는 조직 내 문제인데, 일이 고되고 힘드니까 프로파일러를 기피해요. 다 안하겠다는데 억지로 데리고 올 수 없잖아요. 인력난이 생길 수밖에 없죠. 본질적으로 조직을 제대로 진단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처우가 좀 좋아졌으면 합니다. 제 생각엔 술값을 더 줘야 해요(웃음).

 

잔혹살인 같은 강력범죄는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게 수사에 영향을 줍니까.

물론이죠. 그런데 수사에 영향을 주고 안 주고를 떠나서,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언론 보도에 범행이 너무 구체적으로 나간다는 거예요. 그런 내용은 감정을 자극하잖아요. 분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를 실행하는데 ‘동기화’하는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 분노의 감정을 갖고 있는데 이런 뉴스를 보면서 ‘나도 해소해볼까?’라고 하면서 범죄를 실행할 수 있게 동기화될까 우려스럽죠.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없어요. 언론에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파일러로서 최순실씨 심리상태는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최씨가 법정에서 범죄 사실을 극구 부인하거나 남 탓으로 돌리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그런 애들 천명 넘게 만났어요. 범죄자들이 자기 죄를 쉽게 인정하겠어요? (최순실이) ‘모든 게 드러났으니 나를 죽여라’ 하겠어요? 그렇게들 안합니다.

 

프로파일러만 17년 했는데 공직생활에 만족합니까. 점수를 매긴다면.

25점이요. 제가 가치를 두는 부분을 가족, 일, 친구 같은 사회적 관계, 부모님 이렇게 4개로 나눠보면 일은 열심히 했지만 나머지는 다 빵점인 거 같아요. 가족에게 충실했나, 부모님에게 잘 했나, 친구들을 잘 챙겼나...4개로 나누면 25점이죠. 나머지 점수는 쉴 때 올려야죠.

 

퇴직 후 뭘 할지 궁금한데요. 계획 세운 건 있습니까.

오랫동안 프로파일러를 해왔으니까 경험을 살리고 싶어요. 그동안 쌓은 경험과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해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강의든 뭐든, 그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권 경감은 ‘보고 싶은 책이 있다’며 시내 서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보고 싶은 책을 사서 느긋하게 읽어 보는 것이 평소 소원이었다고 했다. 퇴직 후 생계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답변이 바로 돌아왔다.

“글쎄요, 치킨집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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