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백해야겠다. 그동안 무지했음을. 세상의 절반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말이다. 언제나 이상하다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내밀한 면면을 파악할 섬세함이 나에게는 부족했다. 나름 공감하려고 노력했지만 한없이 어설펐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인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노라 그동안 뻔뻔히 소리쳤을까. 부끄럽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반성문을 적어본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상당 부분 그것은 아내, 엄마, 그리고 며느리가 되는 일을 뜻한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고, 남편을 묵묵히 보살피며 시부모님을 정성들여 수발드는 것. 그리고 때로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가족의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바람직한 여성상이다. 이와 같은 평범한 삶의 범주를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곧바로 마뜩찮은 시선이 따라붙는다. “결혼은 안 하니?” “애는 왜 낳지를 못하니?” “어떻게 가정을 내팽개치고 자기 살 궁리만 하니?” 그러다가도 어느 만큼의 성공을 거두면 영광스러운 칭호가 부여된다. 슈퍼우먼이니 원더우먼이니,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 씨는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궁극의 경지에 다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사람이라고나 할까. 김지영 씨를 한마디로 묘사한다면 ‘무던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번번이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지만, 거기에 필사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좌절하여 힘없이 주저앉지도 않는다. 그저 오늘을, 덤덤히 살아갈 뿐이다.

나는 김지영 씨의 하루하루를 보며 가슴이 참 먹먹했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일상이 전혀, 전혀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우리 할머니를, 어머니를, 그리고 가까운 이들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담아낸 르포르타주에 가깝다고 말이다.

나의 글로는 그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없어, 본문의 몇몇 대목을 옮겨보려고 한다.

오남매 중에 공부를 제일 잘 했다는 어머니의 말에 초등학생 김지영 씨는 묻는다. “근데 왜 선생님 안 했어?” “돈 벌어서 오빠들 학교 보내야 했으니까. 다 그랬어. 그때 여자들은 다 그러고 살았어.” “그럼 선생님 지금 하면 되잖아.” “지금은, 돈 벌어서 너희들 학교 보내야 하니까. 다 그래. 요즘 애 엄마들은 다 이러고 살아.

고등학생 때 괴상한 남학생에게 스토킹을 당한 김지영 씨는 아버지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는다.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하고나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러면서 회상한다.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대학교 3학년이 된 김지영 씨에게 친구 윤혜진 씨는, 월급은 제때 나올까 의심스러운 회사에도 취업하기 어려울 거라고 한다. “왜?” “우린 스카이가 아니니까.” “취업 설명회 때 오는 선배들 봐. 우리 학교에서도 괜찮은 회사 많이 가.” “그 선배들 거의 남자잖아. 너 여자 선배 몇 명이나 본 것 같아?”

회사를 그만두고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원을 찾은 김지영 씨에게 할아버지 의사는 이런 말을 던진다.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김지영 씨는 생각한다.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고.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김지영 씨는 조금씩 본인을 잃어간다. 그리고 끝내 알 수 없는 이상 증세를 보이며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김지영 씨를 담당하는 의사는 본인이 ‘여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대학 동기이자 본인보다 공부를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 아내가 교수를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되었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는 것을 보며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해의 범위는 출산 문제로 퇴사하는 동료 상담사에게까지는 확장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업무공백으로 고객을 잃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면서, 그는 굳게 다짐한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이 200쪽 남짓의 책에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가 수없이 많을 것이다. 며칠이고, 아니 몇 달이고 밤을 새 이야기해도 부족할지 모른다. 삶의 무게는 어느 한쪽에만 과하게 편중되어 있고, 경쟁은 몇 배나 불합리하다. 그리고 차별과 억압, 멸시가 아직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이러한 상황을 즐기는 가해자들이 있고, 묵과하는 방조자들이 있다. 나 역시 그랬을지 모르고, 앞으로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도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 마치 그 정신과 의사처럼, 내 주변의 김지영들을 위로한답시고 어쭙잖은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싶지 않다. 대신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 왜 우리는 같은 세상에서 태어났는데 이처럼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겠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특권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돌아보아야겠다. 그리고 연대해야겠다. 잇닿을 연(連)에 띠 대(帶). 띠를 잇대는 것은 기본적으로 책임을 분담하는 것. 노동뿐만 아니라 노동의 대가도 공평하게 나누는 것. 그리하여 2002년, 2012년, 그리고 2022년에 태어나는 김지영들은 누군가의 아내, 엄마, 그리고 며느리라는 굴레에 짓눌리지 않고, 본인답게, 본인의 이름으로, 본인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

스무 살 봄, 짧은 반성문이다.

임하영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펼져질지 잘 알지 못하지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최근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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