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국민권익위원회>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이른바 ‘n분의 1 시대’가 시작됐다. 28일 0시를 기점으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전면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법집행에 따른 혼선과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을 이유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던 부정부패의 고리를 잘라내고 소통ㆍ신뢰ㆍ통합으로의 전향적 변화가 일어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청탁이나 과도한 접대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해 왔다”면서 “김영란법은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국민적 열망이 결실을 거둔 것으로 질기고 질긴 부패를 근절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1년 6월 14일 국무회의에서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공정사회 구현 대책의 일환으로 법 제정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태동됐다. 김 전 위원장은 1년여가 지난 2012년 8월 16일 ‘김영란법’을 입법예고했고, 이후 관계기관의 협의를 거쳐 2013년 8월 5일 김영란법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2015년 3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이후 1년 2개월만인 지난 5월 9일 시행령이 발표됐고, 7월 28일에는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이 나왔으며, 9월 6일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의결했다. 그리고 지난 2011년 국무회의에서 법 제정 필요성이 제기된 지 5년 2개월 만에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김영란법의 직접적인 적용대상은 공무원을 비롯해 공직유관단체 임직원(160만명), 교직원(70만명), 언론사 임직원(20만명) 등 250만명이다. 이들의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약 400만명에 달한다. 일각에선 간접적인 대상자까지 포함할 경우 2000만명이 넘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영란법은 △ 부정청탁 금지 △ 금품수수 금지 △ 외부강의 사례금 제한 등이 큰 줄기를 이룬다. 먼저 부정청탁 금지의 경우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대상 직무를 인·허가, 인사 개입, 수상·포상 선정, 학교 입학·성적 처리, 징병검사·부대배속 등 총 14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들 14가지 업무와 관련해 청탁을 할 경우 부정청탁으로 간주돼 처벌을 받는다. 단, 공개적으로 요구하거나 공익적 목적으로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 등 5가지 행위에 대해서는 부정청탁의 예외 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금품수수 금지의 경우 가장 중요한 기준은 ‘1회 100만 원, 1년 300만 원’이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 1년 3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1회 100만 원 이하, 1년 300만 원 이하의 경우에는 직무 관련성의 여부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 직무와 무관한 경우에는 1회 100만 원 이하, 1년 300만 원 이하의 범위 내에서 금품 등을 수수할 수 있다. 하지만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1회 100만 원 이하, 1년 300만 원 이하의 금품 수수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다만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사교ㆍ의례 등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이나 선물 등의 경우 8가지 예외 사유를 인정하고 있다. 이른바 ‘3ㆍ5ㆍ10 규정’이다. 따라서 사교나 의례 등이 목적일 경우 음식물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의 범위 내에서 금품 등을 제공할 수 있다.

외부강의 사례금의 경우 장관급 이상은 시간당 50만원, 차관급과 공직유관단체 기관장은 40만원, 4급 이상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임원은 30만원, 5급 이하와 공직유관단체 직원은 20만원으로 제한된다. 사립학교 교직원, 학교법인 임직원, 언론사 임직원의 경우 외부강의 사례금 상한액은 시간당 100만원이다. 사례금 총액은 강의 시간과 관계없이 1시간 상한액의 15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청탁금지법의 효과는 벌써 정가와 관가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6일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은 피감기관 구내식당 등에서 1만~2만원대 식사를 했다. 식사비용은 각 상임위원회에 배정된 국회경비로 계산했다. 국회 보좌진의 밥값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피감기관에서 소속 상임위 의원 및 보좌진들을 챙겼던 것과는 확 바뀐 풍경이다. 관가에서도 법 시행 초기 부정청탁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갖가지 대책은 내놓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청탁금지법 시행에 맞춰 자체 신고 시스템을 구축했다. 교육부는 부처 홈페이지에 전용 신고사이트를 개설했다. 기획재정부는 김영란법을 주제로 한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을 제작해 직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재계도 김영란법 시범 케이스가 되지 않기 위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과 경제단체들은 법 초기에 의도치 않게 적발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대형로펌 등과 함께 각종 설명회와 사내 온·오프라인 교육을 진행했다. 또한 상당수 대기업 홍보·대관 업무 부서에선 저녁식사를 점심으로 대체하는 등 식사자리를 줄이고 주말 골프 일정들도 모두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급호텔 레스토랑을 포함한 식당가에서는 3만원 이하의 가격에 맞춘 메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의 내용이 까다로워 구체적인 법 적용 시 혼선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데다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경제회복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청탁금지법 취지와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한다”면서도 “김영란법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행위규제다. 법의 실효성 확보와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선 법 시행 이후 발생하는 피해와 부작용들을 검토해 면밀한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금품수수 금지보다 부정청탁 금지 부분이 더 큰 문제”라며 “자칫 공직사회의 복지부동과 보신주의가 심화될 수 있는 만큼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는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란법을 둘러싼 이같은 우려에 대해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은 “김영란법의 내용이 처음에는 다소 야박해 보일 수 있지만 이른바 청렴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착된 관행”이라면서 “김영란법이 입법 취지에 맞게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 법 시행 이후 제기되는 문제점에 대해선 향후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개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김영란법이 시행 초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성 위원장은 “직무 관련성 기준이 애매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 스스로는 법 위반 여부를 알 수 있다”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김영란법이 지나치게 어려운 법적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법이 안정적으로 시행된다면 불합리한 접대 관행이 사라지는 대신 건전하고 투명한 의사소통 절차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단기적으로 경제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성 위원장은 “청렴한 사회가 되기 위해 한 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법 시행으로 인한 긍정적인 경제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불필요한 접대비 지출이 감소하면 기업의 경영상 비용부담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고통스럽다고 해도 어려움을 딛고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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