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오전 경주시 성건동 한 주택가에 주차돼 있던 차량이 두차례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기와로 파손됐다.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지난 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역대 최강 지진이 발생했다. 하지만 정부의 부실 대응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정부 부처는 국민안전처다. 국민안전처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재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설됐는데 취지에 다르게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는 지진 발생 직후 3시간 가량 먹통이 됐다. 지진 직후 당시 국민안전처 홈페이지에는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시스템 점검 작업으로 인하여 현재 웹서비스가 중단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더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화면만 떠 있었다. 이에 국민들은 현재 지진 상황이나 대응 매뉴얼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안전처는 먹통 이유에 대해 “접속자 폭주에 따른 접속 불가 현상"이라고 해명했지만 가장 긴급한 순간에 안전처가 아니라 불안전처가 됐다.

재난 문자 알림도 도마에 올랐다. 국민안전처가 긴급재난문자를 보낸 시각은 저녁 7시 44분 규모 5.1의 첫 지진이 발생한지 8분만이었다. 이것도 진앙에서 반경 120km 이내 지역인 부산, 대구, 울산, 경북 등의 주민들에게만 보냈다. 진앙지에서 거리가 먼 서울까지 느낄 정도였지만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재난문자가 오지 않았다.

이에 13일 당정회의에서 참석한 김희겸 국민안전처 재난관리실장은 “1차 5.1 규모의 지진이 났을 땐 반경 120km 안, 2차 5.8 규모 지진이 났을 땐 반경 200km 안으로 문자를 발송했다”며 “진도 분석 시간을 단축하긴 했지만 문자 알림을 위한 연구에 국내 기술이 아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실장은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모든 국민에게 재난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는 게 쉽지 않다. 진도가 어느 정도 됐을 때 보낼 것인가를 놓고 진도를 분석해야 하는데 기상청과 국민안전처 시스템으로는 곧바로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대책으로 ”용량 확대를 논의 중이고, 재난안전통신망을 별도로 확보하는 것을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지진 재난 문자는 일본과 비교해봤을 때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규모 5도 지진 발생시 10초 안에 경보 문자가 발송된다. 진앙지에서 거리가 먼 지역은 지진이 느껴지기 전에 대피할 시간을 벌수 있다. 이뿐 아니라 일본 방송사는 지진 발생 1분 전부터 긴급 지진 속보 방송을 시작하고 지진이 발생하면 경보음 발령, 지진 발생 지역 알림, 지진 대비 방법 설명 등을 긴급 상황에 필요한 내용을 자세히 알린다.

우리나라도 지난 5월 ‘지진방재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지진발생 시 긴급대응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분석기술 개발, 관측망 확대 등을 통하여 지진 조기 경보시간을 현재 50초에서 2020년까지 10초 이내 단축을 목표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공언한 지진 조기 경보 시간인 50초는 지난 12일 경주 지진을 통해 공허한 발언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공식 입장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지진 관련 발표를 한 정부기관은 기상청이었다. 첫 번째 지진 발생 후 1시간 36분이 지난 밤 9시 20분이었다.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온 시각은 첫 번째 지진 발생 후 2시간 47분이 지난 밤 10시 31분이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전국 피해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 전 행정력을 동원해 피해자 구조지원과 복구 등의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고 지시했다. 이어 황 총리는 “일부 국민들이 지진 발생으로 임시 대피하는 등 불안해하는 만큼 심리적 안정과 보호를 위한 조치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지진 관련 브리핑을 총리실에 맡겼다. 청와대는 지진 발생 다음날인 13일 오전 국무회의 전까지 공식 입장이 없었다.

박 대통령이 경주 지진 사태에 대해 긴급보고를 받은 시각은 밤 9시 30분 경으로 알려졌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박 대통령은 경주 지진에 대해 재난안전비서관으로부터 즉각적인 보고를 받았다. 대통령께선 보고를 받은 뒤 원자력 발전소 등 주요시설 안전을 위해 만반의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규모를 조속히 파악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사뭇 비교된다.

지난 4월 14일 일본 서부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6.5의 강진이 발생한 후, 아베 총리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26분’이었다. 구마모토현 강진이 발생한 밤 9시 26분, 아베 총리는 도쿄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진 발생 보고를 받은 아베 총리는 9시 52분 총리관저로 복귀하면서 “방금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재해응급 대책에 전력을 다하도록 지시했다. 또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고 기자들에게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이후 밤 11시 20분 각료들이 참석한 지진비상재해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뒤 0시 34분 기자들 앞에서 두 번째 인터뷰를 통해 상황을 알렸다. 이후 아베 총리는 4일간 9차례 브리핑을 직접 주재하며 지진 대응에 나섰다. 아베 총리는 지진 지역을 2차례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지진에 대응한 덕분에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11개월 만에 50%를 넘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번 경주 지진에는 경상자 8명, 재산피해 253건이 접수됐을 뿐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었다는 점에서 정부가 늑장 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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