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용호 공사.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통일부는 17일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부인, 자녀와 함께 탈북해 최근 한국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태 공사는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현학봉 대사 다음의 서열 2위로,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가운데 최고위급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의 장래문제 등을 이유로 태 공사가 탈북했다”고 밝혔다.

태 공사의 한국행을 두고 외신들도 앞 다퉈 소식을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태 공사를 만난 사람에 의하면 그는 수준급의 영어실력을 갖추었고, 부드럽고 정중했다. 태 공사는 여타 북한 외교관과 다르게 솔직담백 했다”고 전했다.

북한 전문가 네덜란드 레이든 대학교 크리스토퍼 그린 교수는 WSJ를 통해 “태 공사의 한국행이 북한이 붕괴의 끝에 와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에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음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린 교수는 “태 공사는 북한 정권 하에서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왔다. 그 결과 여타 외교관들이나 해외로 파견된 노동자들과 다르게 온 가족이 런던에서 편안하게 함께 살았다. 그랬던 태 공사의 탈북은 오늘날 북한 정권에게 좋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WSJ는 “태 공사의 드라마틱한 탈북은 평양 엘리트들의 충성심에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여러 고위 관리들은 김정은 체제에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태 공사의 탈북을 대북제재의 결과로 봤다. WP는 “몇몇 전문가들은 태 공사의 한국행이 강화되고 있는 대북제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추측한다. 수년 동안 북한 정권은 해외 대사관을 돈 버는 곳으로 생각해왔고, 외교관들은 금, 담배, 코뿔소 뿔, 헤로인 등을 밀수하며 본국의 명령을 따랐다. 하지만 북한당국의 이런 행동에 전방위적으로 제동이 걸리며 외교관들이 할당량을 채우기가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영국왕립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아시아 담당관 존 닐슨-라이트는 “태 공사 탈북 소식을 듣고 놀라긴 했지만 의외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태 공사처럼 밝은 사람은 북한 정권과 바깥 세계의 차이점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닐슨-라이트는 태 공사의 탈북이 한국과 서방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 이유로 그는 “태 공사는 북한 정권의 영향력 있는 수많은 인사들과 접촉해왔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 정권이 현재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유용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태 공사가 사석에서 궁핍한 현실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에 있는 친지들은 물가가 엄청나게 비싼 런던에서 한달에 1200파운드(약 174만원)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내가 마치 풀장과 사우나가 완벽히 갖춰진 궁전에서 살고 있는 줄 안다”고 털어놨다.

가디언은 “태 공사 가족은 방 두 개와 부엌이 딸린 런던 서부 지역의 평범한 집에서 살았다. 태 공사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혼잡통행료를 걱정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또 “태 공사가 언제 어떻게 한국으로 망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과 영국 정부의 물밑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 정보부 MI6가 주선하고 영국 정부의 안전가옥에서 태 공사 가족이 머물도록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태 공사의 두 아들은 영국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맏아들은 26세, 둘째아들은 19세이다. 가디언은 “둘째 아들의 동급생에 의하면 그의 가족은 7월 중순 경 사라졌다”고 전했다. 둘째 아들의 친구인 19살, 루이스 프라이어는 “그는 매우 좋은 친구였고, 페이스북과 왓츠앱을 즐겨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모든 SNS 계정이 닫혔다”고 밝혔다. 프라이어는 “우리는 매우 그의 신변을 걱정해 계속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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